[중국농업연수] 5.연변이라는 곳


써 삼일째. 삐걱대는 버스에 올라 백두산을 향해 간다. 이 버스도 역시 안전벨트는 없다.어젯밤에는 볼 수 없었던 연길(연변)의 정겨운 모습이 눈앞에 열린다. 마치 어렸을 때(70년대) 내가 자랐던 시골의 모습이지만 이곳은  주민의 52%가 조선족이어서 조선족 자치주로 인정 받은 중국의 연길자치주다.

 


새로운 가이드의 연길에 대한 재미난 얘기들이 시작된다.

이곳에서는 중국어와 한국어가 혼용되고 있는데 상점들은 대부분이 조선족들이 운영하며 간판을 내걸 때는 한글로 크게 쓰고 아래에 자그맣게 중국의 간자가 들어있다. 어딜 보아도 이곳은 한글이 더 많이 쓰인다.

조선족들은 아직도 대부분이 내부 결혼을 하는데 요즘은 중국인들과 결혼하는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걱정 섞인 이야기도 들려준다. 도시화가 진척될수록 젊은이들은 도시에서 생활하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중국인들과 결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이야 조선족 며느리를 얻으면 큰 자랑거리가 되겠지만(중국은 남자가 가사일과 요리, 자녀를 돌보지만 조선족은 여자가 하기 때문) 우리 조선족으로서는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의 전통을 지키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농촌은 자꾸 고령화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심각한 문제는 연길의 조선족 비율이 자꾸 줄어들면서 중국 정부는 조선족자치주를 해체하는 방안도 강구하는 중이라고 한다. 한민족의 민족 정기를 없애버리고 완전히 중국화 시키려는데 이것은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 정책과도 맞물려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한국에서 우리는 그들을 위해 무었을 해주었는가? 약하디 약한 조국에 대한 울분과 자괴감이 밀려와 안타깝다.


농촌으로 갈수록 조선족과 중국인을 구별하고 것도 명확하단다.

조선족의 집은 지붕 측면이   모양이고 중국인의 지붕은 모양이다. 집 구조 또한 다른데 조선족은 인가와 축사가 분리되어 있지만 중국인들은 인가와 축사가 통합되어 있어 가축과 함께 산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조선족은 논농사(조선족이 이주하면서 연길의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됨)에 주력하고 중국인은 밭농사(옥수수와 콩 중심)를 많이 짓는다.

길거리에서 소달구지를 끌고 가면 그는 조선족이고, 말달구지를 끌고 가면 중국인이 분명하다.

이곳은 생활 수준이 낮아 보통 2~3 가구가 한지붕 아래에서 살아가는데 보통 굴뚝 하나를 한가구가 쓴단다. 부유한 집은 굴뚝이 하나 뿐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5개의 굴뚝에서 5가구가 조밀하게 모여 사는 집도 부지기수다.

 

 

백두산(2744m) 인근에 다다르자 지방도로에서 보이는 모든 곳이 파노라마의 멋들어진 사진처럼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계속해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만드는 대자연에 대한 존경심이 샘솟는다.

이곳은 기후의 수직적인 변화가 크기 때문에 식생의 차이도 뚜렷하고 종류도 다양하다. 대체로 이 지역에는 수천여종의 동식물이 살고 있다. 식생을 고도별로 보면, 높이 5001050m는 혼합림지대로 침엽수(낙엽송·가문비나무·사시나무 등)와 활엽수(자작나무·황철나무 등)가 혼재한다. 높이 1750m까지는 침엽수림지대로 침엽수가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높이 2100m까지는 관목림지대로 이깔나무·월하나무 등이 주요 수종을 이룬다. 높이 2100m 이상은 한대림지대로 겨울기온 -45이하에다 강풍이 불기 때문에 털진달래·풍모버섯·바위솔 등이 자생하며, 이 지역의 1/3이 전형적인 북극식물로 총 170여 종에 달한다고 한다.


< 백두산 인근에 다다르자 곧게뻗은 금감송 사이에 야생화가 군락을 이르고 있다 >

by e농부 | 2007/02/05 19:37 | ♠ 해외농업연수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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